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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 / 몬스 (@bsd_mones) / 오다+다자 조합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머리맡에서 핸드폰이 윙윙대기에 눈을 꽉 감은 채 전화를 받았다.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퉁명스런 여성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오다 사쿠노스케 씨?”
오다가 잠긴 목소리로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예.”
“저희 회사에 입사지원을 하셨죠? 1시간 뒤에 면접이니까 늦지 않게 오세요.”
“예?”
“정장을 입고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화는 허무하게 끊어졌다. 오다는 잠에서 덜 깬 머리를 굴리려고 노력하며 핸드폰의 화면을 노려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은 뒤에야 자신이 어디에서 전화를 받은 것인지 깨달았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주변을 빙빙 돌던 오다는 씻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지체 없이 욕실로 달려갔다. 얼음장 같은 수돗물을 뿜어내는 세면대에 머리통을 그대로 밀어 넣었더니 귀가 떨어질 것 같았다.
오밤중에 면접이라니, 그것도 한 시간 전에야 통보하는 회사라니, 블랙 기업도 이런 블랙 기업이 없다. 하지만 오다는 수긍했다. 그가 지원한 회사는 평범한 회사가 아니다. 고작 15초의 통화로 오다에게 주어진 새로운 의뢰였다. ……아니, 이제는 의뢰가 아니지. 오다는 숙소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를 대강 가늠해 보며 서둘러 양치질을 시작했다. 침대에서 흘러내린 이불을 밟고 자빠질 뻔 했지만 진짜로 자빠지지는 않았다. 

 

새벽이 되어 신호등이 모두 꺼졌다. 도로를 주행하는 차들도 낮보다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평일의 퇴근 시간이라면 차로 꽉꽉 막혀 있을 사거리도 황량했다. 그러나 머리를 올려붙이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똑똑하게 보일런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살짝 과속해야 했다. 숙소에서 나올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저 잠이 덜 깨서였던 모양인지, 시가지 멀리 본사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심장이 고막을 뚫고 나올 듯 마구 쿵쿵대기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며 입이 바싹 말랐다. 어제 내린 눈이 아직 남아 길이 미끄러웠다. 차가 돌아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운전해야 했다.

그처럼 출생신고가 거부된 이능력자들은 직업 선택의 폭이 극단적으로 좁았다. 대부분은 부랑자가 되거나 수감자가 되고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은 같은 처지의 이능력자 사장을 만나 착취당하며 근근이 살아갔다.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사회의 밑바닥인 이능력자들 중에서도 ‘날 때부터 버려진’ 자들은 더 내려갈 수도 없는 최하위 계층이었다. 그렇게 시작하면 존재를 증명하는 어떤 절차도 밟지 못한 채 난 어둠에서 그대로 사몰하기 마련이고, 그런 형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과 노력이 필요했다. 
오다는 날 때부터 버려진 자였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아니면 그 때문에 불행해 진 것인지는 몰라도 돈을 벌 만한 재주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오다는 어느 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청산하기로 마음먹었고, 가진 모든 재화를 불살라 그것을 실현시켰다. 여태껏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다는 말 그대로 음지에 뿌리내린 듯 했다. 오다를 얽매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었고, 작업이 끝난 시점에 오다의 손에 남은 것이라곤 약간의 현금과 몸에 걸친 것들, 그리고 항상 사용하던 권총 두 정 뿐이었다.

오다는 텅 빈 옥외 주차장에 차를 댔다. 텁텁한 달빛을 등진 빌딩이 사무적으로 오다를 내려다보았다. 오다는 목이 뻐근하도록 건물을 살폈지만 몇 개 층에 희미하게 불이 밝혀져 있을 뿐, 사람이 그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과자를 몇 조각 부러트려 세워 놓은 느낌이었다. 건물은 위압적으로 높고 거대하여 어떻게 봐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작위적이고 어색한 분위기가 풍기기는 했다. 증축공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오다는 밤눈이 밝음에 감사하며 헤드라이트를 끄고 차에서 내렸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다른 곳은 모두 암전인데 중앙 빌딩의 로비에만 불이 들어와 있어 헤맬 필요가 없었다. 로비는 전형적인 대형 사무실의 그것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더 안쪽은 커다란 열대 나무와 형이상적인 장식물로 꾸며져 있었다. 꺾어 들어가는 지점에 승강기가 보였고, 맞은편에는 반짝거리는 대리석 계단이 펼쳐져 있었다. 온통 살굿빛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다행히 직원 한 명이 방문객을 위한 소파에 기대 서 있었다. 
무엇이든지 대충 하고 치워버릴 것 같은 인상의,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가 아주 큰 남자였다. 그는 얼어붙어 빨간 손으로 담배를 뻑뻑 태우고 있었는데 오다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크게 반색했다.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태연히 소파에 담배를 눌러 끄고는 가타부타 말없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보폭이 큰 오다 보다도 걸음이 빨랐는데, 따라가다 놓쳐 버려도 ‘그럼 퇴근해도 되지요?’ 하고 그대로 가 버릴 것만 같은 인상이라, 참아 왔던 질문을 꺼내면서도 그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오다는 세련되어 보이지만 작동을 멈춘 스피드게이트를 낯설게 여기며 입을 열었다.
“원래 다들 이 시간에 출근하는 겁니까?”
“예.”
“사람이 별로 없는데….”
“예에. 뭐, 휴가철이라서. 겨울 휴가요.”
“……”
“우리 회사가 새로운 방침을 도입하려고 해요. 휴가를 몰아 쓸 수 있는 것도 그 중 하나지요. 요즘은 유례없는 대설이라지 않습니까. 몇 년 치의 휴가를 때려 박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군요.”
“실적만 낼 수 있다면, 일 하기는 편합니다.”
직원은 승강기 앞에서야 멈춰 섰다. 승강기가 1층에 머물러 있었기에 문이 곧바로 열렸다. 직원은 같이 타려는 듯하더니 19층 버튼을 누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는 문이 닫히기 전에 “수고하십쇼” 하며 빙글빙글 웃었다. 오다는 어색한 모습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승강기가 중력을 거스르고 몸을 위로, 위로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19층에 도착할 때 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한쪽 벽은 특수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요코하마의 야경이 전부 내려다 보였다. 철근 구조물 사이로 달이 뜬 바다가 반짝거렸다. 오다는 무덤덤한 얼굴로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한동안 그것을 지켜보았다. 승강기 내부도 무척이나 추워서 주머니 속에서까지 냉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지상은 조그맣게 축소되어 마치 장난감 마을 같았다. 
19층에 도착해 승강기에서 내렸다. 정면에 일직선으로 넓은 복도가 쭉 펼쳐져 있었고, 사무실로 보이는 방이 네 개 있었다. 복도 끝에는 다시 가로로 뻗은 복도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셔터가 내려져 있어서 출입할 수 없었다. 복도의 전등은 모두 꺼져 있어서 승강기 문이 닫히고 난 다음에는 주변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천장 모서리에서 빨간 빛이 깜빡거렸다. 보안용 카메라였다. 오다는 카메라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카메라는 움직임을 쫓는 듯 했다.
네 개의 사무실 중 하나에서 미약하게 빛이 새나오고 있었다. 오다는 묵직한 석재 바닥에 울리는 구두 굽 소리를 들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방은 사무실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황량했다. 가구라곤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과 테이블 스탠드, 의자 두어 개 뿐이었고, 커다란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달빛 한 점 들지 않았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있지도 않아서 오래된 발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오다는 방을 둘러보던 중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작은 인영을 발견했다. 스탠드의 빛이 닿지 않는 반대 방향에서 책상에 딱 달라붙어 있었던 데다가 검은 색 일색의 코트를 어깨에 덮은 때문에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가니 규칙적이고 느릿한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온도 조절 장치가 작동중이긴 한 모양인지, 방 안은 확실히 바깥보다 따스했다. 그러니까 이 자도 코타츠 속의 고양이처럼 졸 수 있는 것이리라.
어떻게 봐도 이 사무실은 면접장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달리 물어 볼 사람도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오다는 자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 손을 들었다.

“어이, 이봐…….”

그의 어깨에 손을 대는 순간 천의무봉의 영상이 펼쳐졌다. 고개를 든 자는 앳된 흰 얼굴의 소년이었다. 그가 눈에 띄지 않게 품고 있었던 총을 오다에게 쏘았다. 총알은 오다에게 명중하지 않고 귀 끝만 스치며 지나갔다. 영상이 끝났다. 오다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피하지 않고 그대로 소년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이미 보았던 것처럼 굉음이 고막을 울렸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총성이었다. 오다가 놀라거나 피하지 않자, 소년의 검은 눈에 이채가 서린다. 그는 금방 총구를 내린다. 그는 스탠드의 불빛에서 대각선으로 빗겨나가 있어, 얼굴의 윤곽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뭐야…… 츄야인 줄 알았잖아.”
“츄야?”
“있어, 쬐끄만 거.”

소년은 여전히 졸린 모양인지 길게 하품하며 눈을 비비적거렸다. 얇은 손가락이 책상 맞은편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의자를 가리킨다.

“앉게.”
“……나는 면접을 보러 왔는데.”
“알아. 앉게.”
“…….”

오다는 소년이 시키는 대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허겁지겁 꺼내다 입은 셔츠가 불편했다. 오다는 무의식적으로 목덜미의 칼라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소년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꽤 방심하게 만드는 생김새인 걸. 나는 분명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다는 자신이 모욕당한 것인지 고민하느라 미간을 좁힌다. 그러나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소년이 웃음기 없는 태도로 무덤덤하게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나이가 몇 살이지?”
“……스무 살.”

소년이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림자가 책상 위로 길게 늘어졌다. 지금 보니 그는 완전히 상처투성이로, 왼손의 손가락에는 부목을 대고 목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목덜미에서부터 미약한 소독약 냄새가 풍겨왔다.

“이쯤 되면 내가 자네의 면접관인 것을 짐작했겠지?”
“그래.”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심술 맞은 검시관마냥 오다를 흘기며 주변을 돌기 시작한다. 소년은 과장된 태도로 뒷짐을 진다. 

“알면서도 반말을 하는군.”
“……존대를 해야 하나?”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런가.”
“보스도 말이야, 이런 귀찮은 일이나 시키고…….”

소년은 투덜거리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나뭇가지처럼 빼빼마른 발목이 흔들거렸다. 

“그거 알아? 포트마피아는 밤의 주시자야. 달이 뜨는 시간부터 요코하마는 우리 영역이 되지.”

어느 순간부터 소년은 다시 총을 들고 있었다. 뭉툭한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매만지고 있었다. 총을 다루면서 조심성이라곤 개미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오다는 저런 식으로 총을 다루다 슬라이더 사이에 살점이 뜯겨나간 이를 본 적이 있었다. 소년은 그런 것 따위는 모르기도 하거니와 관심도 없고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능력자 집단이 포트마피아만 있는 건 아닐세. 옆 동네에 무장탐정사라는 회사가 있거든. 마피아와는 다르게 그쪽은 합법적인 곳이지. 자네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 곳은 입사하기가 무척 까다롭다던데.”
“입사시험이라는 게 있어, 탐정사에 어울리는 인간임을 증명해야만 일원이 될 수 있다나. 그러니까 우리 같은 인간들에게는 무리지. 안 그런가?”

오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은 오다에게 알려 주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데 목적을 둔 어조로 느릿하게 말했다.

“보스는 포트마피아에도 무장탐정사의 입사시험과 유사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선대 보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현 보스 파의 사람들도 꽤 많이 죽은 데다 아직 ‘그 최연소 간부’ 오자키 코요의 신임도 받지 못했으니, 무엇보다도 당장 기능 가능한 유능한 인재가 필요한 거겠지.”
“……그렇군.”
“나도 운이 없구만.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내게 이런 일을 시켜? 유격대는 싫다고 버티니까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해. 자기도 나한테 아프지 않은 자살 약이라고 속여서 복합 영양제를 잔뜩 먹여 놓고.”
“…….”
“……여하간 이런 배경 때문에 원래 없던 면접이 갑자기 생긴 걸세. 자네는 운 나쁜 실험체 1호. 이해했나?”
“그래.”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할까.”

오다가 자신감 없이 대꾸하자 소년은 들고 있던 총을 오다에게 건넨다. 얼결에 그것을 받아들자, 그는 어쩐지 빙긋이 웃고는 자신의 이마 한 가운데를 가리킨다. 

“자, 쏘게.”

오다가 미간을 찌푸리자 소년이 한 번 더 재촉한다. 

“이게 시험이야. 자네의 면접관을 쏘는 것.”
“……시험 문제가 이상한 것 같은데.”
“알 게 뭐람. 자네는 지금 불법 조직에 들어오려는 거라구."
"……."
"쏘지 않을 텐가? 이대로 반년만 있으면 난 자네가 쳐다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기회는 지금 뿐일세."
"난 너에게 어떤 원한도 없다만."
"그럼 불합격이야. 그리고 비밀 엄수의 조항에 의거해 살해당할 거야. 이 빌딩에서 나갈 수 없어. 사실 여기,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거든.”

오다는 들어왔던 문을 돌아본다. 어느 사인가부터 닫혀 있었다. 문 위쪽에서 카메라의 렌즈가 반짝였다. 어쩌면 저 렌즈를 통해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년이 손짓 한 번만 하면 무장한 장정들이 한 트럭 쏟아져 들어와 오다를 그대로 지옥의 문 앞까지 던져 놓을 지도 몰랐다. 
오다는 손 안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꼈다. 소년의 총은 베레타 8000L 쿠거였다. 손이 작은 소년이 쓰기에 좋을 정도의 소형 모델이었지만 오다도 몇 번 써본 적이 있다. 오다가 애용하던 모델은 아니었지만 눈을 감고서도 분리 재조립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제품이었다. 이것으로 사람을 죽인 전적도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다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쏘지 않아.”

소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분명 이 방은 바깥보다는 따뜻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오다의 손가락은 발갛게 얼어 있었다. 소년의 손도 비슷했다.
오다는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천의무봉에 너무 오래 의지해 온 탓일지도 몰랐다. 어지간한 위험에선 항상 천의무봉이 먼저 발동했기 때문에, 도리어 천의무봉이 보이지 않으니까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이 그저 안전한 것이라고 여겨 버리는 것이다. 

“자네의 서류를 봤어. 그런 경력을 가지고는 포트마피아 외의 다른 곳엔 갈 수 없을 거야. 아무리 세탁을 해도 속일 수 없는 눈이 있는 법이거든. 다른 조직에 들어가더라도 자네의 동료들은 곧 그들의 가족, 연인, 친구를 청부살해 한 킬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머잖아 알게 되겠지. 그런 곳의 규율이란 대개 거기서 거기야. 조직원의 무엇도 강제하지 못하니, 자네는 적진에 발만 들인 꼴이 될 걸세. 포트마피아는 달라. 모리 보스의 치세는 더욱 그렇지.”
“…….”
“게다가 돈도 필요하지? 그 싸구려 양복을 보면 알아.”
“그래.”
“그럼 만약 살아 나가더라도 돈이 없어서 금방 굶어 죽겠네.”
“그렇겠지.”
“안타까워라.”

소년은 실망하며 오다에게서 권총을 돌려받는다. 그는 훅 불면 날아갈 듯한, 가볍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라면 날 바로 쏴 버렸을 텐데.’ 오다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소년은 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으면서 오다에게 총구를 겨눌 생각은 아직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저 왼손에 총을 들고, 팔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책상에 올라 앉아 발목만 흔들었다.

“좋아, 기회를 한 번 더 줄까. 사람을 쏘는 게 싫다면 거짓말을 해 봐. 세 개 정도만.”
“거짓말?”
“아무거나 좋아.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묘한 거짓말 말이야.”

오다는 미간을 좁혔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색이자 소년이 킥킥대기 시작했다. 오다는 한참 뒤에야 뇌를 쥐어짜내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일주일에 일곱 번, 매운 타코야키를 먹지 않으면 발작을 일으킨다.”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폭소하기 시작한 소년을 보면서, 오다는 자신이 불법 조직의 면접을 보러 온 것인지 소년의 심심풀이 말상대를 해 주러 온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진짜라면 보고 싶은 걸.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어 가짜 티가 나.”
“나는…. 사실 여자다.”
“아하하….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그건 미묘한 거짓말이 아니잖아.”
“확신할 수 있나?”
“음…….”

소년은 정곡을 찔린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하긴, 직접 확인하기 전엔 알 수 없는 거지. 게다가 내게 ‘확신할 수 있나?’같은 말을 하다니. 신선한걸. 하지만 자네는 남자가 맞잖아. 서류를 이미 봤다는 얘기는 홀라당 까먹은 건가?”
“……그랬지.”
“바-보.”
“…….”
“자, 하나 남았네.”

오다는 팔짱을 끼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과묵한 오다로서도 거짓말을 해 본 기억 정도는 있었다. 살인청부업을 생업으로 해 오며 군경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훔친 적도, 다른 사람을 속여 미끼로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다가 입을 열어 거짓을 입에 담는 것은 대체로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특별히 진솔한 성격이어서는 아니었다. 자신의 말재주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세치 혀로 남을 조종하느니 그 자를 죽여 치우는 것이 지금까지의 오다의 방식이었다.

“더 이상 사람을 죽였다간, 죽이는 즐거움에 빠져버릴 듯 해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소년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다는 그제야 소년의 눈망울이 어둡고 맑은 빛깔임을 알았다.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했다.

“자네는 거짓말에도 재주가 없군. 그런 충동에 사로잡히는 인간이었다면 나는 일찍이 자네에게 죽임당하고 이 책상에 쓰레기처럼 걸쳐 있을 거야.”
“그런가.”
“안됐네.”

소년이 드디어 총구를 오다에게 겨눴다. 검은 총구가 스탠드의 불빛에 의해 반짝이는 순간 오다는 천의무봉의 영상을 보았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폭음과 함께 발사된 총알이 자신의 미간을 깨끗하게 관통했다. 오다는 영상이 끝나는 순간 왼쪽으로 몸을 날려 바닥을 한차례 굴렀다. 소년이 다시 방아쇠를 당기며 말을 걸었다. 

“피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얌전히 죽겠다고 한 적도 없다만.”
“아하하하…….”

오다는 허리와 팔의 사이로 파고드는 총알에 뒷목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오다는 소모된 장탄수를 헤아리며 바닥을 한차례 더 굴러야 했다. 그는 천의무봉의 영상이 시야를 덮는 순간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다를 향해 정확히 날아드는 총알의 궤적이 보였다. 5초는 정말로 짧은 시간이지만 오다는 시간의 틈새를 다루는 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영상 속의 오다는 무릎이 총에 꿰뚫려 쓰러졌다. 그러니까 하단을 노려 오는 총알이라는 것이다. 오다는 어깨 밑의 하네스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총구의 방향, 그리고 목표로 하는 지점을 안다면 총알을 총알로 맞춰 튕겨내는 것도 오다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총은 거의 동시에 발포되었다. 마하의 속도로 날아오던 탄환들은 허공에서 맞부딪힌 뒤 거센 충격에 의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찌그러진 총알들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정적을 찢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뒤늦게 화약 타는 냄새가 맡아졌다.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방아쇠 당기는 것도 잊고 오다를 바라보았다. 오다는 팔을 곧게 뻗은 채 숨을 고르다, 곧 팔을 내렸다.

“정말로 죽을 생각이 없는 거군.”
“그렇다고 말했잖아.”
“죽을 생각도 없고, 사람을 죽일 생각도 없다고?”
“……그래.”
“어째서 죽이려 하지 않는 거지? 자네는 킬러잖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묻는 건가, 면접관으로서 묻는 건가?”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렇다면 답하지 않겠다.”
“하!”

소년이 날카롭게 웃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소리였다. 차갑고 깊은 시선이 오다에게 내리꽂혔다.

“자네는 이 악의 조직에 어울리는 인간임을 보이길 요구하는 자리에서, 스스로로 하여금 타인을 경계하게 만드는 능력이 없음을 증명했어. 명령에 태연히 불복하고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였지. 자네에겐 개인이 아닌 조직의 부품이 될 생각이 없는 거야.”

오다는 침묵했다. 소년은 재판관처럼 선고했다.

“개인에겐 쓸모라는 게 도무지 없어. 보스가 원하는 건 멋진 인간 같은 게 아니야. 특별하고 유용한 도구를 원하고 있어. 자네와 같은 방만한 고집쟁이를 안고 가야 할 다른 이유를 댈 수 있겠나?”
“……댈 수 없다.”
“이렇듯 모자람 넘치는 이에게 단 한 푼의 값어치라도 있다면 나는 놓치지 않아. 사람을 부리느니 자기가 해치워 버리고 마는 나태한 츄야랑은 다르단 말이야. 자네는 말단 중의 말단도 되지 못해.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이 와도 전부 거부해 버릴 테고, 그에 따라 내려지는 징계로서 목숨을 거둬 가려 해도 죽일 수 없지. 자네는 가지고 있느니만 못한 패야. 여전히 할 말이 없나?”
“네 말이 모두 맞다.”

오다는 암담해지고 말았다. 살인을 거부하는 살인청부업자는 쓸모가 없다. ‘살인청부업자가 아니라면 대체 나는 무엇이지?’ 오다는 문득 깊은 물속에 빠진 기분을 느꼈다. 그를 다른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무언가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겐 아무런 가치가 없어.”

아무리 손을 털고 늪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오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살던 곳을 떠나오고, 하던 일을 그만둬도 총만은 버리지 못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구차한 변명을 대면서 까지도 그것만은 놓지 못했다. 오다의 본질이 살해하는 자이고 오다의 속성이 죽음을 집행하는 자이며 오다의 천성이 살인자이기 때문이었다. 
오다는 결국 마음을 접었다. 소년이 앞서 말했듯, 오다가 몸을 의탁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곳은 이곳 포트마피아 밖에 없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몸을 쉴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살인만을 그만두기로 한 것뿐인데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어쩌면 너무 큰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다는 침착하려 애쓰며 문을 부수고 탈출할 경로를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빠져나가서 다시 한 번 다른 도시로 떠날 수 있을까? 떠나 봐야 결국 도착하는 곳엔 아무것도 없고, 그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오는 죄의 대가만이 그를 맞이할 테지만. 
소년이 불러올 수 있는 원군이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가 없으니 탄창을 아껴야만 한다. 겨울 휴가철이라고 하니 준비된 인력은 많지 않겠지. 그렇다면 해볼 만 한 전투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큰 빌딩에 잠입해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때마다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것은 청소를 맡는 외주업체 직원들이 쓰는 전용 통로와 휴게실들이었다. 

오다는 머리를 팽팽 굴리는 데 바빠 소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총을 품에 갈무리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소년은 어딘가 질린 듯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정말로 눈치가 없구나.”
“?”
“서류에는 이능력자란 걸 적지 않았지? 그 정도의 보험은 들어 놔야 할 테니까.”
“……맞아.”
“미래 예지의 이능력자라는 걸 알았다면 보스가 직접 면접을 주도했을 거야.”
“……내 미래 예지는 제한적이야. 대단한 능력이 아니다.”
“그래. 반 푼 정도의 값어치지. 츄야였다면 ‘뭐? 미래 예지? 그걸로 뭘 어쩔 건데?’ 하고 반듯하게 뭉개 줬을 거야. 하지만 그건 전략이 아닌 전술일 뿐이야.”

소년이 책상에서 내려왔다. 마치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로, 그 때까지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몸을 낮추고 있던 오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는 원래라면 마피아에는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야. 모든 기준에 미달되지. 합격 도장을 찍어 준다면 그건 단지 자네가 가진 그 이능력 하나 때문이야.”
“…….”

소년은 느릿하고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무적으로도 들리는 말투였지만, 오다는 어쩐지 그 사이에 안온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만의 착각이 아니라면, 소년은 마치 오다를 걱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포트마피아에선 자네가 원하는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어. 자네의 재능을 빛낼 자리 같은 건 만들어지지도 않을 테고, 자네가 가진 그 어떤 것도 의미를 다할 수 없을 거야. 언젠가 겨우 한 알의 밀알만을 위해 이용되고 소모된 뒤 버려질 수도 있어. 그래도 단지 약간을 더 연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할 텐가?”

오다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소년이 꼬집은 대로, 포트마피아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오다를 위해 준비된 자리 같은 건 없을 것이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누구도 오다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도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고, 심지어는 오다가 다른 이를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매 순간 허상을 쫓고 있음을 자각해도 도무지 이 꿈을 놓을 수가 없다. 멀고 먼 빛을 쫓아 심연과도 같은 진흙탕 속에 들어서는 것임을 알아도 멈출 수가 없다. 소년이 무가치하다 말한 연명조차 오다에겐 신의 자비로 내려진 유예처럼 느껴졌다. 오다는 지금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사람을 쓰는 행위와 가까워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폭음과 연기와 재, 피웅덩이 속에서 작은 단서 하나를 찾아낼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소년은 씻어낼 수 없는 기괴한 현명함이 담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것은 오다가 아니라 바로 저 소년인 것처럼, 눈앞의 사람을 대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아득히 오랜 시간 후를 그리는 것 같았다. 
그때 오다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무릎을 관통한 총알의 영상 속에서 어떤 신호를 잡아냈다. 오다는 순간 아연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 오다는 결국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부드러웠다.

“너는 내가 마음에 든 거군.”
“……”
“죽이려고 총을 쏜 게 아니었잖아. 그렇지 않다면 무릎보단 머리를 노렸겠지.”

일어서서 마주보니 소년은 키가 큰 대신 아주 말라 왜소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자네가 이능력자라는 걸 알았으니까야.”
“……그런가.”
“하여간 자신감이 없네. 뭐, 됐어.”

소년은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마치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 있기라도 했던 양, 앞서 오다를 안내해 주었던 로비의 직원이 다시 찾아와 굳게 닫혀 있던 사무실 방의 문을 열어 보였다. 이곳으로 안내 해 줄 때와는 달리 새까만 선글라스를 써서 시선을 감춘 그는 이제야 겨우 포트마피아의 조직원처럼 보였다. 그는 문을 연 다음 한 발자국 물러나 길을 텄다. 소년은 그 쪽은 보지도 않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벌레라도 쫓듯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자네 때문에 머리가 아파. 인재를 뽑으랬는데 자네 같은 무쓸모 사람을 붙여 주다니. 자네 때문에 내 계획에 지장이라도 가면 어쩔 거야. 누님의 기록을 깨고 츄야보다 먼저 간부가 되어야 하는데.”
“고마워.”
“……됐어. 아무튼 간에 어서 가보게.”
“그러지.”

오다가 몸을 돌려 나왔다. 어둑한 방 안에 있다가 밝은 조명이 켜진 복도로 나오니 비로소 소년의 앳된 얼굴이 보였다. 약간 곱슬 끼가 있는 검은 머리카락에 아직 둥근 뺨을 갖고 있는 남자아이였다. 눈으론 이쪽을 쳐다보면서 정작 고개는 모로 기울이고 있었다. 어쩐지 그와 자주 마주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뭐야, 뭘 봐.’ 하고 투덜거리기에 말을 바꿀까 싶어 빠르게 문을 닫아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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