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 마베 (@MYDEARODA) / 다자+오다
다자이와 오다가 나란히 루팡의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루팡의 내부는 고요했지만, 이따금씩 다자이가 얼음을 손가락으로 건드릴 때 정적이 깨지곤 했다. 다자이가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다자이, 오늘은….”
“오다 사쿠.”
다자이가 고개를 돌려 오다를 바라보았다. 오다가 다자이와 눈을 맞추었다. 무슨 일이지, 라고 묻 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자이는 다시 고개를 반대로 돌려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얼음과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멈추었다. 다자이가 오다를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뗐다.
“나 퇴사했어.”
다자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고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 앞에 우뚝 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다 또한 안고와 미리 입을 맞춘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다 사쿠, 안고.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안 돼? 나름 용기내서 말해봤는데.”
다자이가 술을 들이켰다. “…그렇군.”
안고가 다자이의 옆에 앉아 위스키를 한 잔 주문했다. 마스터는 동그랗게 얼음을 깎고 있었다.
“또 저희를 놀리시는 건가요?”
“놀리는 거라니! 나는 진심이라고, 안고. 보스는 아직 내가 퇴사한 줄 몰라. 말하지 않았거든. 사직서를 멋지게 던졌어야 했는데! 어차피 모아둔 돈은 많고, 검소하게 살면 10년 정도는 살 수 있겠지? 집도 팔고….”
다자이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포트 마피아에서 퇴사라니, 말도 안 되는…”
“검소하게 사는 다자이라….”
오다가 안고의 말을 끊고 중얼거렸다. 오다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다자이가 검소하게 산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기, 오다 사쿠… 나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검소하게 살 수 있다고?”
다자이가 오다를 향해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오다의 반응이 달갑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다가 다자이를 천천히 훑었다. 드디어 다자이의 어깨에 코트가 없음을 깨달았다. 오다가 안고의 옆으로 자리를 슥 옮겨 아무래도 다자이가 말하는 퇴사는 진실인가보다, 하고 속삭였다.
“…내 말은 안 믿고 내 코트는 믿는 거야!? 코트는 불태운 지 오래라고.”
오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를 옮겼다. 무슨 생각으로 퇴사를 한 건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직이 저절로 자신을 죽여주길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살에 반드시 성공하는 방법이라도 찾았나?
“그래서 말이지. 안고, 오다 사쿠. 나랑 같이 퇴사하자!”
“오다 사쿠!”
다자이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오다를 불렀다. 오다는 다섯명의 아이들과 아저씨 한 명을 데리고 있었다. 다자이가 아이들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자아이가 수줍은 듯이 다자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말 아저씨를 데리고 올 줄이야.”
“아저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다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마피아를 나왔으니까 언제 아저씨와 아이들이 인질로 잡혀도 이상하지 않다. 아저씨가 다자이를 바라보며 대소했다. 다자이가 미리 구매해둔 표를 각자에게 나눠주었다.
“그래서 말이지, 오다 사쿠. 우리의 완벽한 신혼 여행….”
“아, 미안해. 아이들을 잡느라… 뭐라고 했지, 다자이?”
“…우리의 완벽한 퇴사 계획에 대해 말해주려고 했지!”
오다 사쿠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신혼 여행… 아니 퇴사 계획은 나중에 말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오다와 아저씨를 돕기 위해 아이들을 붙잡았다.
“그보다 정말로 안고는 오지 않았네.”
다자이가 저 멀리서 들어오는 기차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안고는 바쁘다고 했으니까.”
다자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렇게 말해도 올 줄 알았어.”
아이들을 기차에 먼저 태운 뒤, 오다와 다자이가 기차에 올라탔다. 다자이가 오다와 자신의 기차표를 번갈아 확인한 뒤, 안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가 누군가와 속삭이더니, 해맑은 표정으로 오다에게 돌아왔다.
“오다 사쿠, 우리는 저기 앉으면 돼!”
“기차표를 바꿨나, 다자이?”
“우후후, 유우 군이 기차표를 바꿔줬지 뭐야!”
다자이가 남자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남자아이도 다자이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글쎄 말이야 오다 사쿠, 유우 군이 오다 사쿠와 재미있게 데이트를 하라고 하지 뭐야!”
물론 아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자이는 오다의 반응이 궁금했기에 오다에게 그렇게 말해보았다. 당황하는 오다 사쿠의 표정이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아까는 시끄러워서 오다 사쿠가 듣지 못했지만!
“…….”
“오다 사쿠…?”
다자이와 오다가 자리에 앉았다. 오다가 힘겹게 입을 뗐다.
“그렇군.”
다자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오다를 바라보았다. 오다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당황한 오다 사쿠다!
“오다 사쿠, 농담이야. 유우 군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
다자이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오다가 멀뚱멀뚱 다자이를 쳐다보더니 이내 표정이 풀렸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가져온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오다 사쿠는 이런 상황에서도 책을 읽다니! 걱정이 없는 건지, 드러나지 않는 건지….
“다자이.”
“츄야, 나 퇴사했으니까 시끄럽게 굴지 말고 가….”
“도착했어.”
“응… 응, 헛.”
다자이가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담요를 벗으며 벌떡 일어났다. 입에는 침이 묻어있었다. 다자이가 소매로 침을 스윽 닦고 짐을 대충 가방에 쑤셔넣었다. 오다가 다자이에게 손을 내밀자 다자이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 기차에서 내렸다. 아이들과 아저씨가 다자이와 오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별장은 여기!”
다자이가 아저씨에게 간단한 약도가 그려진 쪽지를 건네주었다. 별장에는 작은 별모양 스티커가, 오다와 다자이가 살게 될 집은 작은 하트 스티거가 붙어있었다. 별장은 오다와 다자이가 살게 될 집으로부터 그닥 먼 거리에 위치하지는 않았다.
“택시를 타고 이 식료품점 앞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될 거야.”
별장에서 가장 가까운 식료품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저씨를 위해 식료품점과 가장 가까운 별장으로 골랐지!”
오다가 멈칫했다. 별장을 골라…? 이 별장 말고도 다른 곳이 또 있는 건가?
“오다 사쿠, 무슨 생각해?”
오다가 약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다자이가 고개를 옆으로 숙여 오다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오다가 움찔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놀랐어?”
“…그런가.”
그게 뭐야, 오다 사쿠! 다자이가 깔깔거렸다. 그가 아저씨와 아이들에게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들자, 오다도 그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이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자 아이가 작게 조심히 가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우리도 갈까, 오다 사쿠?”
다자이가 오다의 코트를 잡아당겼다.
“여기야.”
바다를 뒤로하는 작은 집이었다. 오다가 놀라 다자이를 쳐다보았다.
“아파트가 아닌가?”
“이제부터는 쫓기는 신세인데, 아파트에 살면 위험해!”
다자이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 내부는 먼지로 가득했기에 다자이가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는데!
“몇 년 전에 사둔 거라서 말이지.”
“몇 년 전?”
“덕분에 한동안 고생했지만!”
다자이가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릇, 수저
이불
베개
오다 사쿠에게 어울릴 옷
다자이가 수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다자이가 수첩에 무언가를 정리하는 일은 드문데. 오다가 다자이의 수첩을 흘끔 보았다.
“무슨 생각 하지, 다자이?”
“편지지!”
“편지지?”
“오늘 사야 하는 거야. 빨리 가자, 오다 사쿠! 침대는 내일이면 올 거야. 오다 사쿠에게 어울리는 옷을 사고, 할 게 엄청 많아.”
다자이가 수첩을 다시 가방에 넣고, 이번에는 카드와 현금을 꺼냈다.
“가자, 오다 사쿠! 가장 가까운 마트는 걸어서 십 분 정도 걸려.”
다자이가 주머니에서 약도를 꺼냈다. 종이가 잔뜩 구겨져있었다. 다자이가 오다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다 사쿠, 이 접시는 어때?”
다자이가 식기 코너에서 그릇들을 이리저리 비교하고 있었다. 오다 사쿠가 카레를 먹을 그릇, 국그릇, 수저를 골랐다. 노란 꿀벌이 그려진 접시와 오다를 닮은 곰돌이가 그려진 접시 두 개를 들고, 곰돌이가 그려진 접시를 오다에게 보여주었다.
“오다 사쿠를 엄청 닮았어.”
“그런가, 다자이.”
“그렇다면 이걸 사야지!”
다자이가 곰 접시 세트를 카트에 담았다. 오다가 다자이를 데리고 위층의 침구류 코너로 발을 옮겼다. 오다가 이불을 천천히 둘러보고, 다자이는 베개 시트를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다자이는 까슬까슬한 느낌의 이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오다는 부드러우면서 얇은 이불을 찾아다녔다. 오다 사쿠는… 그러고보니 오다 사쿠는 어떤 종류의 이불을 좋아하는 거지!? 베개 시트와는 무관하지만 그래도 궁금한데. 으으음… 나중에 물어보지, 뭐! 오다 사쿠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많으니까!
“다자이.”
“어, 응!? 오다 사쿠, 절대로 오다 사쿠의 이불 취향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군. 내 이불 취향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나.”
“용건이 뭐야?”
다자이가 만지고 있던 베개 시트를 내려놓고 오다에게 다가갔다.
“이 이불은 어떤가 싶어서.”
“앗, 무늬가 귀엽잖아. 합격이야.”
다자이가 이불을 만지며 대답했다. 이정도는 얇으니까 들고갈 수 있겠지?
“그보다 오다 사쿠, 커플 베개는 어떨까? 엄청 예쁜 시트를 찾았어.”
“네가 원한다면.”
오다가 직원을 불러 베개 시트와 이불을 구매했다. 이불과 시트를 카트에 담으니 벌써 장을 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앗, 맞아. 편지지!”
다자이가 카트를 끌고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안고에게 줄 편지를 써야지. 안고의 취향과 정반대의 편지지를…! 우후후후. 분명 마음에 들겠지? 다자이가 반짝반짝한 편지지와 스티커를 카트에 담았다. 이불과 시트를 제외한 계산을 전부 마치고, 커다란 박스에 장 본 것들을 전부 넣고 대충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그러고보니 옷을 못샀지, 옷은 백화점에 가서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커다란 박스를 낑낑거리며 들었다.
“오, 오다 사쿠….”
오다가 다자이가 들고 있던 박스를 건네받았다.
“역시 키가 작아서 그런가!? 오다 사쿠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
“앞이 보이지 않았나?”
다자이가 눈을 끔뻑거렸다.
“들켰다!”
다자이가 냉장고에 미리 넣어둔 주스를 꺼내 오다에게 건넸다.
“수고했어, 오다 사쿠! 아직은 침대가 오지 않았으니까 이불을 깔고 자야할 것 같은데… 빨리 빨래하면 될 거야.”
“세제가….”
“우후후후, 걱정 마. 세제는 내가 챙겨왔어!”
다자이가 침대와 시트를 꺼내 세탁기 안에 넣었다. 잘 작동하려나 모르겠네…. 아니, 만약 작동하지 않으면 오늘은 땅바닥에서 자야한다고! 다자이가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작동시켰다. 탈탈탈 소리가 나며 세탁기가 잘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자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은 방으로 향했다. 그가 바닥에 엎드려 편지지에 스티커를 잔뜩 붙이고, 자신이 가져온 검정색 볼펜으로 안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 안고! 나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퇴사 계획을 세웠어. 퇴사 계획이라고 하니까 말이지, 오다 사쿠를 놀리기 위해 재미있게 데이트를 하자고 하니까 오다 사쿠가 당황하지 뭐야! 얼마나 귀여웠는데. 오늘은 오다 사쿠와 함께 장을 보러 갔어. 이불도 사고, 베개 시트도 사고… 참! 아직 침대가 도착하지 않았어! 오늘은 바닥에서 자야할 것 같아. 안고도 함께 왔다면 좋을텐데. 오다 사쿠도 안고를 보고 싶어 할 거야. 아직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쉬운 건… 루팡에 가기 힘들어졌다는 점! 여기는 바다가 보이는 집이긴 하지만, 역시 마스터의 술이 벌써 그리워지고 있어. 아닌가? 마스터의 동그란 얼음이 그리운 게 분명해. 또 전화가 잘 안 될 수도 있어. 모리 씨가 얼마나 전화를 걸던지! 귀찮아! 그것 빼고는 다 좋은데. 특히 근처에 아이들이 살아서 오다 사쿠가 마음 놓을 수 있다는 것도! 아직 오다 사쿠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아이들을 보러 별장에 갈 예정이야. 안고, 아무리 내가 퇴사를 했어도 모리 씨에게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 알려주면 안 돼. 알았지!? 물론 안고가 모리 씨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안고가 우리를 놀리기 위해서라던가, 사실 안고도 가고 싶었다던가 하는 것들 있잖아! 이번 편지는 아직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쓸게 많이 없어. 나중에 또 생각나면 편지 붙일게. 편지지에 붙은 스티커는 안고가 보고 싶은 만큼 붙여본 거야! 버리면 안 돼, 알았지!? 나중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