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골드 / 달밤공기 (@moonlight_air40) / 오다자
날이 어둑하게 휘몰아치던 날. 노을빛 하늘은 먹구름에 사로잡히고 비가 올 거 같은 하늘. 가벼운 발걸음 소리는 수풀을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멈추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은 아름다우나 주변은 적막하고 음산하다. 그런 곳을 평온하게 있는 그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산산이 불어오는 바람은 뺨을 간질이고 나무를 어루만지러 갔다.
“다자이 그곳은 위험하니 내려와라.”
“여어- 오다사쿠 언제 온 건가?”
조금이라도 헛디디면 넘어가는 아찔한 난간에 위태로이 서 있는 소년. 야살스럽게 웃더니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그는 물끄러미 소년의 손을 보았다.
“내려오게 손잡아주지 않겠나?”
소년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조금만 다가가면 잡힌다. 하지만 눈앞에 잡히던 그 순간 소리소문없이 흩어졌다.
* * *
눈만 감아도 자네가 있는데도 만질 수 없네. 자네는 이미..
“죽은 지 4년이나 지났으니 그저 내 허상일 뿐. 내 머릿속에 잊히지 못한 미련일 뿐이다.”
닫혔던 눈은 천천히 어둑해지는 세상을 본다. 고동색 눈동자는 그리운 이를 생각하는 것은 없어지고 어둠으로 변하는 바다가 보였다. 몸에 힘을 푼 상체를 묘석은 묵묵히 받쳐준다. S. ODA. 친애하는 친우의 묘석. 그가 죽기 전 나를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자 사랑하는 사람.
그가 이끌어준 길을 밟고 넘어온 소년은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묘비 앞에는 그가 놓은 꽃다발과 다 피운 향의 잔재만 남았다. 푸드덕 새들이 나무에 앉아 찌르르 운다.
“이제 슬슬 일어날까. 오후에 땡땡이를 쳤으니 내일 쿠니키다군의 잔소리 들을려나.”
가볍게 내던진 말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묵묵히 걸어 나간다. 날은 완전히 기울었다. 가로등 불빛을 지나가다 우뚝 멈췄다. 세월이 흘렀지만 익숙한 골목길. 평소의 나라면 적당히 돌다가 숙소로 갔지만 변덕으로 그 길을 유유자적 걸어갔다. 뚜벅뚜벅 발굽 소리가 퍼져나가면서 어두운 골목길이 변해갔다.
* * *
어두운 분위기와 다르게 명쾌한 방울 소리와 함께 계단을 걷는 소리가 가게 안에 들렸다. 미성이 든 목소리는 붉은 적갈색의 머리에 바다를 담은 눈동자. 검은색 스프라이트 셔츠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이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한다.
“먼저 와있던 건가, 오다사쿠?”
“아 다자이인가.”
“안고는 아직 안 왔나 보네.”
“며칠 전에 안고를 만났었다. 밀수품 거래를 위해 4일 출장이라더군. 오려면 이틀은 더 걸릴 거다.”
“그런가. 마스터 늘 같은 거로.”
간단한 안부 인사를 마치고 소년은 오다의 옆에 앉았다. 싱긋 웃는 소년은 제 나이대에 맞는 얼굴이었다. 시킨 술은 금방 왔다.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과 함께 한 모금 입안에 넣었다. 얼음은 술잔에 맞아 맑은소리를 흘리고 잠잠해졌다. 검은 정장에 검은색 코트를 걸쳤으며, 반곱슬 다갈색 머리카락은 왼쪽 붕대를 감은 소년. 무심한 얼굴을 한 체 동동 띄워진 얼음을 쿡쿡 찌른다. 테이블에 엎드려 술잔만 바라보는 다자이를 힐긋 바라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웃곤 턱을 괴어 자신을 지긋이 쳐다본다.
“오다사쿠 자네 코트 안에 아이들 물건이 있어.”
“그렇군. 오늘 낮에 들렀다 왔을 때 들어갔나 보다.”
“흐응~ 마스터 여기 세제 있나?”
“없습니다.”
“아아 그런가.”
명쾌한 목소리로 유리잔을 닦는 마스터에게 가벼운 어조로 톡 던졌다. 마스터는 정중히 소년에게 말했다. 다자이는 이것 참 유감이라며 회전식 의자를 빙그르르 돌았다. 다자이는 몸을 기울여 그를 바라본다. 무심한 듯 평온한 표정. 깊은 바다에 들어간 것처럼 짙은 푸른색 눈동자. 언제부터인지 오다사쿠를 바라보면 눈을 먼저 보게 되었다.
“오다사쿠 그거 아는가? 자네 눈이 아름답다는 걸.”
“그런가. 다자이 ---..,,, -- -----..,,..”
뒷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오다사쿠는 그때 무엇을 말했었지? 은은한 불빛에 잔잔한 음악은 온데간데없고 차갑고 어둠밖에 없는 거리. 뒤늦게 주변을 살펴본다. 어두운 골목길. 네온사인 불빛은 깜박깜박 빛난다. 서늘한 기온을 담은 밤공기는 그의 폐를 차갑게 식어 내린다.
“향수병이라도 돋아서 여기까지 온 걸까나. 돌아가야지.”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괜찮다고 여겨온 것이 왜 지금에서야 나타나는지 자신을 알 수 없었다. 찜찜함을 가슴속 응어리에 묻히고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잠을 청해보나 아까 있었던 일 때문인지 잠이 쉽사리 들지 않았다.
“오늘 잠은 글렀네.”
창가에 비춘 달빛을 의지하며 완전자살독본을 짚고 잠이 들 때까지 읽었다. 다자이는 해가 떠오를 시간에 잠이 들었다. 깨어난 시간은 오전 11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어차피 지금 가도 쿠니키다군에게 잔소리 듣는다. 이왕 늦은 거 점심시간 뒤에 가야지. 느긋하게 이불 속에 잠겨있다. 식사도 거르고 밖으로 나가 곧장 탐정사에 들르지 않고 자살 명소를 보러 돌아다녔다. 이곳저곳 들려도 오늘따라 사람이 번잡하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빙빙 돌아다녔고 도착한 곳은 강가였다. 망설임 없이 강가에 뛰어내렸다. 풍덩 물결이 일렁이다가 잠잠해졌다. 다자이의 몸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고 물방울이 위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눈을 감는다.
“ㄷ...자..,, 다.,,이,,..씨!”
누군가 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자이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미동 없이 수면 밑으로 내려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게 쉽사리 안 되고 끌려가는 힘이 생겼다.
* * *
“다자이 정신 차려라!”
숨이 터지면서 물을 밖으로 뱉어냈다. 잔기침이 멎어갈 때 소년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오다사쿠?”
“어 나다. 폭파 잔재에 맞아 바다에 떨어지는 걸 멀리서 봤다.”
“그런가.”
물을 먹은 옷은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는 다자이가 괜찮을 걸 확인하고 물에 젖은 코트를 벗어 짠다. 젖은 셔츠가 달라붙었고 몸 윤곽이 어렴풋이 보였다. 풀어진 쇄골과 셔츠를 입은 상태로 윤곽이 그려진 가슴과 잔 근육이 형상되었다. 다른 곳으로 옮기다 오다사쿠와 눈을 마주쳐 버렸다.
“자네도 같이 젖어버렸는데 이거 어쩌지?”
“괜찮다. 젖은 옷은 갈아입으면 되니까. 걸을 수 있어?”
“응 걸을 수 있어.. 오다사쿠?”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년은 해를 등진 오다사쿠를 바라본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간절하고 높은 미성에 쩌저적 갈라져 사라졌다.
“정신 차려요, 다자이씨!!!”
눈이 번뜩 떠졌다. 상체를 들어 자신을 부른 소년을 쳐다봤다. 하얀 머리에 검은색 머리. 탐정사원에게 선물 받은 흰 셔츠에 멜빵 바지. 넥타이와 넥타이핀. 자수정에 달을 박은 눈동자. 소년의 이름은 나카지마 아츠시. 이 소년은 항상 자신을 찾아 자살을 막는다. 올곧은 눈동자가 걱정하는 눈빛과 함께 다자이를 바라봤다.
“숙소에 찾아가 봐도 안 들려서 한참 찾았어요. 또 강물에 빠진 거예요?”
다자이는 소년의 꾸짖음을 흘려듣고 정면을 하염없이 본다. 걱정과 푸념을 쏟은 아츠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다자이씨라고 불렀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눈초리로 또 다른 일을 꾸미는 걸까. 뚱한 얼굴을 그리고 다자이를 째려봤다. 그제야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능글맞은 미소로 소년을 응대하였다.
“아츠시군 눈에서 빛이 나오겠어.”
“다자이씨가 이상한 짓을 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니 이상한 일을 꾸미나 쳐다본 거예요. 탐정사로 갑시다.”
아츠시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긴 다자이는 천천히 걸어 강가를 떠났다. 젖은 상태로 탐정사에 가면 쿠니키다의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숙소에 들렀다 옷을 갈아입고 탐정사에 갔다. 당연하게도 잔소리를 들었지만, 능청스럽게 굴어 넘겼다.
다자이가 친우의 묘를 찾아간 건 몇 주 후다.
전국으로 이슬비가 내리는 날. 다자이는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았다. 지나가면서 보인 꽃집에서 변덕으로 꽃 몇 송이를 샀다. 터덜터덜 걷는 발걸음과 질퍽이는 물소리와 함께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면 한 곳 있을 거다. 다자이는 눈앞에 보이는 묘를 묵묵히 본다. 손에 쥔 꽃을 묘 앞에 놓고 슬픈 미소를 짓고 떠났다.
꽃을 보내는 것에서 다자이는 많은 감정을 쏟아 보냈다. 노랗고 예쁜 천수국은 다자이의 감정에 묻어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사랑이었을 것이다.
천수국 꽃말: 헤어진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 가련한 사랑, 이별의 슬픔.
헤어진 연인이나 친구에게 주는 꽃.